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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업기능요원 회고
    카테고리 없음 2021. 6. 27. 23:56

    1년 전에 작성했던 글을 지금 올립니다.

     

    [편의상 반말로 작성되었습니다.]

     

    병특생활이 100일 남았다.

     

    1년 전에 산업기능요원에 관한 정보를 정리해서 올린 적이 있었다.

    https://sesang06.tistory.com/131

     

    이 글은 조회수가 꽤나 나왔고, 산업기능요원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한번씩 꼭 보는 지침서로 발전했다. 나는 보통 사적인 이야기를 쓰지 않지만, 처음으로 산업기능요원을 복무하면서 얻은 고생담을 적어보려고 한다. 정보글이 주는 딱딱한 정보와 다른 느낌의 스토리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전 포스트가 준비하는 요령을 담았다면, 이 포스트는 실제로 생활이 어떤지 대략적으로 알 수 있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서문

    내 병특생활은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다. 한국 최고의 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을 시작했지만, 그렇게 잘 하지도 못했고 뭐 그렇게 흥미가 있지는 않았다. 고등학교때 열심히 공부했고, 더 뭔가 공부에 목매고 싶지 않았다. 이것저것 뻘짓을 많이 했다.

    아무튼 개발에는 뭐랄까 그다지 흥미가 없다. 솔직히 말해서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을 만들면 좋겠는데, 끈덕지게 무언가를 집중하는 것은 내 성미에 전혀 맞지가 않았다. 학교가 이론에 치우친 강의를 제공하고, 영강과 영어 교과서를 고집한다. 어려운 내용을 외국어로 공부하니까 머리에 잘 안 들어온다.

     

    아무튼 - 삼학년 1학기가 되면서, 병역특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체생활에 극도로 적응하지 못한다. 사람 만나는 것도 귀찮고 남들과 이야기하는 것도 싫다. 21개월짜리 군대. 좋아서 가는 사람 단 한 명도 없겠고 나는 더 가기 싫었다.

     

    산업기능요원 제도의 뜬소문 조각조각을 주워듣게 되다

    컴퓨터공학과는 산업기능요원이라는 것으로 군대를 안 갈 수 있다더라. 34개월이라서 길긴 하더라도, 바깥공기 쐬는 게 어떤가. 과 동기들과 얘기하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복학하고도 말 섞을 일은 전혀 없을 것 같다) 눈치껏 어떻게 잘 면접 봐서 회사만 구하면 되는 것 같았다.

    인생에 대단한 계획을 세우고 꿈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아니고, 무계획이 계획이었으므로 - 산업기능요원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정보처리 산업기능요원이란 무엇인가

    현역이 산업기능요원을 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1. 정보처리산업기사

    2. 컴퓨터공학과 4학기 이상 이수

    3. 나를 채용할 의사가 있는 회사

     

    첫 출발은 정보처리산업기사이다. 정보처리산업기사를 응시하기 위해서는 4학기 이수가 필요하다. 정보처리산업기사는 1년에 세 번 응시할 수 있다. 두 번째 시험이 9월 말에 아슬아슬하게 끝나게 된다. 나는 첫 번째 시험에 낙방하고 두 번째 시험에 합격하게 되었다.

     

    이제, '나를 채용할 의사가 있는 회사'가 중요하다. 현역 신청은 일년에 단 한 번, 11월에 할 수 있다. 중소기업 회사 하나당 한 명을 편입시킬 수도 있고, 편입시키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학생을 영입하여 산업기능요원으로 고용하고 싶어 하는 중소기업은 많지도 않다.

     

    현역 산업기능요원은 기본적으로 엄청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있다. 군대 대신 사회에서의 직장생활을 꿈꾸는 지망생들은 모래알처럼 많다. 대학생을 들여보낼 정보처리 업체는 많지도 않다. 아무튼 병무청에다가 신고를 하면 편입이 될 수도 있고, 안 될수도 있다. 서울청 기준으로 1년의 50여명의 컴퓨터공학 졸업자와 재학생이 현역으로 편입될 뿐이다. 나머지 희망자들은 편입에 실패하고, 1년 뒤를 노리던가 입대를 선택한다.

     

    대학생 산업기능요원. 2년 어설프게 배운 전공지식만 있다. 뭐 나름 대학생들중에서는 머리 좋은 인간들이겠지만, 업무 경험이 전무하고 사회생활 한 번 해보지 않았다. 편입에 실패하면 입대하기 위해서 11월에 칼같이 퇴사한다. 한편 편입에 성공해도 아무리 길어도 3년 후에는 복학하러 학교로 돌아간다. 내 생각에 애매한 중소기업들이 산업기능요원 제도를 잘 이용한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신입 개발자가 입사를 기피하는 회사가 대학생들을 고용하지 않을까 싶다.

     

     

    중소기업에 입사해 첫 사회생활의 발을 떼다

    나는 코딩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력이 그렇게 좋지 않았다. 지금도 같은과 동기의 프로그래밍 실력에서 뒤쳐지긴 할 것이다. 두 번째 시험에 합격하고 나니까 이미 뭐 왠만한 회사들은 다 그 해 모집을 다 한 것 같았다. 조건이 좋지 않았다.

    어떻게 아무튼 이력서를 썼는데, 전공필수 강의 조별과제가 SNS 만들기였다, 이거라도 이력서에 넣자 해서 넣었다.

     

    나를 합격시킨 곳은 역삼에 있는 작은 중소기업이었다. 그 당시 대표는 관심사 SNS 서비스를 런칭시키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 전공필수 과제가 SNS였으므로, 거기에서 흥미를 느꼈다고 생각한다. 거기서 나는 산업기능요원으로서 첫 직장에 들어가게 되었다. P사였다.

     

    낡은 사무실에, 6시 30분이 되도 아무도 가지 않았다. 모든 신입 직원에게 주휴수당을 고려하지 않는 최저임금을 지급하는데, 30분 무급노동으로는 사실 최저임금법 위반이 되었다. 거기에 9시 출근에서 1분이라도 늦으면 7시까지 근무를 더 해야 했다. 근로계약서로 프리랜서 계약서를 내밀었는데, 강남구 사무실이 아니라 어디 분당에 있는 사무실에 계약을 했었다. 뭔가 많이 이상했지만, 다른 조건을 따지기에는 채용 공고가 너무 없었다. 일반적인 병역특례 회사는 공개적으로 현역을 채용하지 않는데, 그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으니까.

     

    P사에서 처음으로 개발을 시작하다

    P사는 서비스 회사로서 2000년대 초반 잘 나갔던 때가 있었다. 그 때를 이끌었던 본부장은 이미 퇴사했고, 만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었다. SI로 남의 서비스 만들면 근근히 벌어먹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건전하지 못한 대박적인 무언가를 꿈꾸고 있었다. 대표는 숨고 같은 플랫폼 사업을 꾸려서, 별로 매만지지 않아도 유저들이 알아서 서비스를 벌어오는 아이템을 원했다.

     

    그런 대규모 앱 서비스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많은 개발과 프로덕트 직원이 필요할 뿐은 물론, 천재적인 사업 수완과 과감한 마케팅 투자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반조건이 하나도 없었다.

     

    보통이라면 적자를 버티지 못하고 폐업하겠지만, 회사는 2000년대 크게 성공했었고, 그 자본을 축내면서 지속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SNS를 만들기 시작했다. 대표가 늘 하고 싶던 아이템이었다. 빙글과 유사한 컨셉으로, 정해진 주제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SNS인 것이다.

     

    기본적으로 앱 서비스이되, 일부 유저를 위해서 웹도 만드는 사양이었다. 나는 코딩을 몰랐으므로, 지시받은 대로 php 오픈 소스를 가져다가 사부작사부작 만들게 되었다.

     

    나는 기획적, 디자인적 아이디어가 전혀 없었다. 그건 노사 측에 모두 불행했는데, 대표는 내가 SNS에 알맞는 적절한 기획과 아이디어도 같이 내길 원했기 때문이다. 그런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것도 있었고, 대표도 기획을 몰랐다. 자기가 기획하는 화면이 정확히 무엇인지 표현할 줄 몰랐고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고 있었다. 그렇게 서비스가 허공으로 불 뜰 때, 신입 웹 퍼블리셔 A씨가 입사했다.

     

    A씨는 비전공자여서 경력이 필요했는데, 웹 퍼블리셔 평균보다 약간 짠 급여에 다닐만하다 해서 입사를 결정하셨다고 한다. 대표는 기획과 퍼블리싱, 디자인을 동시에 지시했다.

     

    그 이후로는 좀 작업이 진척이 되었다.

     

    퍼블리셔가 빙글 등 기존 sns를 참고하고 디자인을 해서 회의를 연다. 회의에서 대표가 안을 제시하고 확정나면 그대로 퍼블리싱이 된다. 그럼 거기에 내가 php로 적당히 오픈 소스를 수정해서 진행된다. 그리고 구글링과 안드로이드, iOS 책을 읽으면서 필수적인 기능만, 네이티브로 구현하게 되었다.

     

    그런식으로 3달정도 되니, 버그 많고 느려터진 하이브리드 웹앱이 하나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것을 기반으로 안드로이드와 IOS 앱이 런칭되었다. 이 서비스를 1년간 내가 주 유지보수하면서, 조금씩 기능을 더하고 버그를 줄이고, 속도를 조금씩 빠르게 만들고...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P사에서 일어났던 각종 트러블들

     

    첫 직장이었기도 하고, 내가 사회성이 떨어지므로 여러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다. 지금은 이직한 지 일년 반이 넘어가므로, 세세한 에피소드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일기를 쓰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재직할 떄에는 자세한 내막을 쓸 수 없는 입장이기도 하니.

     

    디자이너 B씨와 사장이 30분 추가 근무 가지고 실강이하다

    회사의 일러스트를 모 사이트에서 판매해 수입을 얻었다. 대표는 디자이너를 무슨 공장에서 찍어내는 직업으로 생각한 것이었다. 디자인은 창조적인 작업이었기 때문에 근본적인 충돌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런데 딱히 대표가 뭐 디자인에 대해서 아는 게 없는데다가 팀을 리딩해줄 경력직이 없었다. 오전 알바들을 무급으로 회의시키기 위해서 점심시간에 콘셉트 회의를 열었다. 야근강요와 더 많은 일러스트를 찍어내라는 지시에 질려서 떨어져나갔다. 디자이너 입장에서 끔찍한 업무환경이라고 다들 말했다.

     

    계약직 디자이너 B씨가 그린 일러스트는 항상 수입이 좋았다. B씨는 동종업계보다 이미 많은 양의 일러스트를 찍어냈다. 대표의 마인드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고 지쳤지만, 업무에 익숙하니까 상황을 묻어두고 그냥 다니고 있었다.

     

    그러다가 일이 터졌다. 아마 그때 그분이 가족과 중요한 약속이 있었던 날이었을 것이다. 2호선의 열차 지연으로 9시에서 조금 늦게 도착했다. 대표는 7시까지 일하기를 요구했고, 중요한 약속에 가지 못하게 되었다.

     

    이미 감정의 골이 커질대로 커진 상태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대표와 디자이너는 크게 싸웠다. 과중한 업무, 30분 공짜 근무에 지각 1분에 무조건 30분 추가. 부팅에만 십분이 걸리는 낡은 컴퓨터. 이런 것을 전부 철폐하라고 요구했지만, 하나도 들어주지 않아서 그분은 퇴사했다.

     

     

    내일채움공제로 월급 장난치다가 퍼블리셔 A씨가 퇴사하다

     

    나랑 같이 일했던 퍼블리셔 A씨. 수습기간이 지나고, 가짜 회사와 계약한 프리랜서 계약을 떼고 적법한 회사와 계약하게 되었다. 그런데 연봉이 면접때 말한 것과 달랐다. 여기엔 내일채움공제가 얽힌 괴상한 계산법이 들어갔었다.

    내일채움공제는노동자의 월급이 매월 일부 공제되는 지원 형태이다. 2년을 회사에 근속하면 정부가 거금을 지원하고 노동자가 받아갈 수 있다.

     

    그런데 2년을 근속해야만 받아갈 수 있는 정부지원금을 대표가 1/2로 나눠서 연봉에 포함된다고 말하는 농간을 부렸다. 결국 지급되는 연봉은 2000대 초반이 되었는데, 거기에 돈이 공제되다 보니 통장에 찍히는 돈이 쥐꼬리만했다. 이런 농간을 부리는 것은 내일채움공제에서 금지하는 사항이긴 하다.

     

     

    거기에 퍼블리셔로 입사했는데 사수는 없고, 애초에 SI가 아니니 일이 없었다. 대표는 새로운 서비스에 대한 기획을 퍼블리셔에게 맞겼다. 마케팅과 기초 투자 없이 개발자 한 명, 퍼블리셔 한 명이서 빠르게 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원했다. 물론 그런 제약조건에서는 될 것도 안 되었다. 그러다가 그분은 면접을 보고, 웹 에이전시의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이직했다.

     

     

    그쯤 되니 수많은 제2의 퍼블리셔 A씨와 디자이너 B씨가 신입으로 들어왔다. B씨는 퇴사 직전에 신입들을 붙잡으면서, 퇴근길이나 점심 시간에 회사의 실상을 알려주었다. 실상을 눈치챈 디자이너들은 바로 탈출했다.

     

    A씨와 B씨가 퇴사한 이후에는 신입들과 친해질 수 없었다. 친해지면 회사의 문제점을 당연히 말해줘야 하고, 그러면 바로 퇴사했다. 대표는 첫눈에는 사람 좋아 보이므로, 퇴사 통보할 때 이런 소문이 사실이냐고 물어보는 센스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면 누가 말해 줬는지 아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이후로 내가 같이 점심을 먹는 무리와, 새로 입사한 디자이너 무리가 갈라지게 되었다.

     

    대표 내외가 직원들 메신저를 들춰보는 것을 알게 되다

     

    회사는 사내 업무에 스카이프를 사용하고 있었다. 디자이너들끼리 대표 모르게 만든 톡방이 있어 거기에서 불만사항을 말하고 다녔다. 그러다가 거기에서 한 명이 퇴사하게 되었는데, 퇴사하는 마지막 날 스카이프를 자동로그인된 채로 떠났었다.

    컴퓨터를 정리하는 중에 사모님이 스카이프를 로그아웃하다가 봤을 것 같은데, 이건 내 추측일 뿐이다. 그리고 그 주 주말, 사모님은 빈 사무실에 방문해서 디자이너의 컴퓨터를 모두 켜 보았다. 이것은 컴퓨터 접속 기록으로 확인이 되었다. 그리고 거기 내용을 모두 보게 되었다. 그리고 디자이너들을 하나씩 불러서 추궁전이 일어났다. 한바탕 난리가 났다. 그 전에도 약간 쎄한 느낌이 있었다. 회사가 아닌데도 회사 사무실 컴퓨터에 접속했다고 뜨는 카톡 알람이 울렸다는 직원도 있었다. 아무래도 주기적으로 스카이프 같은 걸 보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나는 이 사건 이후로 회사 컴퓨터에 카톡을 깔지 않았다. 또 민감한 주제는 절대 문서로 말하지 않고 말로만 하는 습관이 생겼다. 입조심의 중요성을 슬프게 배운 게 아닌가 한다. P사가 어떤 회사였는지 물어보는 분들께, 나는 이 일화를 간략하게 소개한다. 그러면 상대방이 굉장히 복잡한 표정을 짓는 걸 보게 된다.

     

    그 외에도 크고 작은 문제가 일어났긴 했다. 전자렌지를 요구해도 사주지 않는다든가, 맥 2012를 쓴다든가, 모바일 앱을 개발하는데 테스트폰이 없어서 폰을 돌려 써야 한다든가 등등. 친한 개발자들에게 당시의 인색했던 개발 프로세스를 생각나는 대로 말하면 좀 질려하는 표정이 있다. 그런 반응이 꽤나 재미있다.

     

    연차 사용 일수로 대표에게 훈계를 받다.

     

    입사한 신입들이 내일채움공제나 프리랜서 계약으로 인해 스트레스 받다 퇴사하는 것에 익숙해졌을 때쯤이었다. 평소에 대표가 휴가를 쓰는 것을 몹시도 싫어했으므로, 나는 7개월간 휴가를 단 하루 썼던 것 같다. 좀 기분전환 좀 할겸, 부모님과 여행을 가기 위해서 휴가계를 썼다. 그리고 사장실에 호출되어 휴가에 대한 면담을 하게 되었다.

     

    노동법상 1년 미만 근속 신입에게는 휴가가 일절 주어지지 않았지만, 노동법이 개정되어서 나처럼 1년 미만 신입도 11개의 휴가가 주어지게 되었다.

    근데 대표의 개정 전 휴가법을 내세우면서, 내가 휴가가 2년간 12개가 주어졌고 그것을 아껴 써야 한다고 설명했다. 여름 휴가를 가기 위해서는 모아두는 게 좋다면서. 새로 법이 바뀌었다고 설명해도 귀를 막았다.

     

    아무튼 뭐, 대표의 특이한 계산법이 맞다고 쳐도, 12개를 언제 쓸 때는 내 마음이지 그걸 대표가 이래라저래라 할 입장이 아니지 않았는가?

    애초에 조그만 회사에서 가장 어린 직원이 연차 좀 썼다고 사장실에 부르는 게 싫었다. 애초에 그 기준으로도 나는 휴가를 많이 쓴 것이 아니었는데도.

     

    적성도 재능도 없는 기획 아이디어를 짜내게 되다

    중간중간에 내가 매만졌던 SI 어플리케이션 유지보수가 끝났다. 개발한 sns를 추가적으로 이끌어나가려고 해도, 기획과 디자인까지 해주었던 퍼블리셔 A씨는 이미 퇴사했다. 개발적으로 이렇다 진행할 일이 없어지자, 대표는 개발팀에게 기획회의를 하게 시켰다. 일주일에 두 번씩 모여서 아이템을 하나씩 무조건 가져와야 했는데,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었다.

    그러다가, 나는 디자이너들이 작업한 일러스트를 사이트에 올리는 단순반복업무를 하기 시작했다. 하루동안 정해진 작업량이 있었는데, 그걸 다 하면 반나절이 지나갔다. 그리고 나서는 기획을 하면 시간이 딱 지나갔다. 개발에 딱히 흥미가 있는 건 아니었으나, 적성도 없고 능력도 없는 기획과 반복 작업만 하루종일 하고 있으니까 지루해서 죽을 것 같았다.

    위와 같은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서 회사 P을 떠나기 위해서 이직을 준비하게 되었다.

     

     

    산업기능요원이 이직하기 위해서는

    산업기능요원은 군 복무를 대신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 직원들처럼 이직이 자유롭지 않다. 현역 기준 34개월간, 두 번 이직을 할 수 있다. 단, 편입 직후와 이직 직후에는 이직이 제한된다. 편입하고 6개월 후, 이직하고 6개월 후에 다른 회사로 이직할 수 있다. 또한, 이직할 수 있는 회사를 미리 구해놓아야 하고, 그 회사 역시 병역특례 기업이어야 한다.

     

    이직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나, 이런 조건이 복무자를 상당히 조심스럽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일반 직원이야 과감히 이직하고, 맞지 않으면 퇴사할 수 있다. 하지만 산업기능요원은 이직하면 좋든 싫든 6개월을 거기 있어야 한다. 이직했는데 전 회사보다 더 별로라면 어떡할 것인가? 현 직장 P사가 끊임없는 잡음은 들렸지만, 그런대로 잘 적응했는데 다음 직장에서도 그럴 수 있다는 법은 어디 있는가?

     

    6개월 이상 P사에서 근속한 일반 직원들은 칼같이 다음 직장으로 이직하지 않았다. 정해진 다음 직장 없이 퇴사를 택하고, 집에서 좀 쉬다가 이력서를 넣어보는 방식을 택했다. 퇴사 시점에 정신적으로 너덜너덜해져서, 좀 쉬고 싶어했다.

     

    산업기능요원으로서 이직을 준비하다

    나는 P사에서 서버, iOS, 안드로이드 세 파트를 동시에 개발했다. 일반적인 개발자의 커리어로는 애매했다. 어플리케이션 회사는 세 직군이 모두 분업화되어 있어서, 각각 플랫폼에 특화된 전문 인력을 원한다. 1년차가 세 개를 다룬다는 것은, 세 개 중 아무것도 못한다는 뜻이다.

    이 때 iOS 개발자로 이직하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아이폰을 쓰는 것도 아닌데 iOS 개발을 한다는 사실이 웃기긴 하다. 이건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애플 특유의 폐쇄적인 정책 때문에, iOS 개발을 하기 위해서는 맥북이 필요하다. 제대로 맥북으로 개발하기 위해서는 컴퓨터 가격만 200만원을 결제해야 한다. 또 한국은 아이폰이 대유행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과거에는 아이폰 인력 수요가 많지 않았다. 그러다가 아이폰이 대두하면서 iOS 개발자의 필요성이 급부상했다. 이러저러한 이유 떄문에 iOS 개발 자는 현재 턱없이 적지만 필요한 데는 많다.

    iOS 개발에 포트폴리오를 집중하기로 결심한 것은, 희귀한 iOS 개발을 내세우면 이직이 좀더 용이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직을 위해서 두 가지를 준비하게 되었다.

     

    코딩 테스트의 경우 대학교 1학년때부터 존재를 알 수 있었고, 꽤나 즐겨하는 학부생들이 많았다. 나는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꾸준히 해오는 친구들이 꽤나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친구들이 현명했다고 생각한다.

    개발직은 신입의 생산성이 크게 낮기에, 신입을 뽑으려고 하지 않는 직종이다. 바글바글하게 많은 신입을 채용하기 위해서, 토익같은 자격증 시험처럼 체로 툭툭 쳐서 걸러내는 용도가 있다. 코딩 테스트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나는 코딩 테스트를 준비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직을 하려고 해도 상당히 옵션이 제한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코딩 테스트 준비로 문제를 조금씩 풀기 시작했다.

     

    두 번째는 개발 블로그를 세워서 글을 포스팅하는 것이었다. 나는 취미로는 내가 좋아하는 글만을 쓰고 싶었다. 따라서 개발글같이 따분한 것은 별로 쓰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직을 하기 위해서는 이력서에 뭐라도 적어야 하기 위해서 개발 블로그를 하나 세워서 뭐라도 쓰기 시작했다.

     

    낙방 끝에 M사에 최종 합격하다

     

    아무튼 사부작사부작 준비하고 나서, 다른 병역특례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다. iOS / 안드로이드 / 서버가 애매하게 잡탕으로 섞인 1년차 개발자. 대부분 서류에서 불합격했고 그나마 몇 개가 면접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하지만 면접을 보는 것도 문제였다. 9시부터 6시 반까지 근무. 퇴근 후에 면접을 보러 간다 해도, 7시에나 회사에 들어갈 수 있다. 막내가 반차나 연차를 쓰는 것은, 인색한 대표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었다.

     

    퇴근 후나 점심시간을 택해서 면접을 보았다. 점심시간에 택시를 타서 지원한 회사에서 면접을 보고, 가방에서 넣어 둔 캐주얼 정장으로 갈아입고 면접을 보거나 했다. K사, C사 등등에서 기술 면접에서 미끄러지다가, 그 결과 M사에 최종 합격하게 되었다.

     

    사직을 가지고 P사 대표와 술래잡기를 하다

     

    M사의 최종합격을 받은 날은, P사의 송년회날이었다. 대표에게 전직 의사를 밝히기 전에, 개발소장님께 먼저 전직 의사를 표명했다.

    개발소장은 퍼블리셔 A씨나 C 주임이 사직을 표시할 때, 붙잡아서 생각보다 그들이 오래 있었던 적이 있었다. 이직 이유로 연차를 쓰지 못하는 것과, 기획이 적성에 맞지 않다고 표기했다. 개발소장은 왠만하면 이곳에서 복무를 채우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했다. 회사에 돈이 많기 때문에 폐업하지 않는다. 사람을 해고하면 정부 지원금이 끊기기에 해고할 수 없다. 사람들이 다들 순하고 정치가 없다. 그런 이유를 댔다. 하지만 나는 의지가 확고했다. 개발소장은 별다른 만류 없이 사장실로 가서 이직 의사를 전달했다.

     

    산업기능요원의 이직하기 위해서는 재직 회사의 대표의 동의가 필요하다. 이걸 '동의 전직' 이라고 한다. 회사가 전직 승인서를 보내서 병무청에서 승인을 하면, 사직 처리가 되고 다음 회사로 이직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동의를 하지 않으면, 이직을 또 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사직 의사를 밝히고 이주 뒤부터, 산업기능요원이 병무청에게 전직을 시켜 달라는 요구서를 보낼 수 있다. 그러면 병무청이 재직 회사의 대표에 연락을 해서, 왜 동의를 안 써주는지 해명하라는 경위서를 요구한다. 이러쿵저러쿵 행정적 절차를 거치면 이것도 결국 이직이 된다. 이 과정을 '비동의 전직' 이라고 하는데, 통상 6주가 걸린다.

     

    비동의 전직을 거치든 동의 전직을 거치든 이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변함없다. 하지만 대표의 협조에 따라서 얼마나 원활하게 이직을 할 수 있는지가 결정된다. 그 이후로 나는 대표에게 줄기차게 동의 전직을 요청했다.

     

    대표는 직원들이 나가려고 할 때, 혹은 수습 기간이 끝나서 정직원 계약을 요구할 때 자주 자리를 비웠다. 우리는 그런 대표의 행동을 '도망친다'고 표현했다. 내가 이직하겠다고 밝힐 때도 마찬가지였다. 계속 자리를 비워서 사장실로 난입해서 계속 사인을 해달라고 요구를 했다. 그렇게 한 네 번 정도 지나니, 대표도 포기했는지 인수인계를 하게 되었다.

     

    원래 iOS, Android 를 동시에 하는 C 주임이 있었으나, 사직했다. 1년 반밖에 안 다녔지만, 나는 P사에서 가장 오래 근속한 신입이었다. 적당한 인계자가 없기 때문에 인계자료는 문서로만 작성했다. 마지막 날, 직원들끼리 송별회를 하고 P사를 퇴사했다. 아쉽게도 나는 연차를 다 쓰지 못했고 1년 6개월을 다니는 동안 쓴 5개의 연차 외에 전부 소멸되었다.

     

    그 이후의 P사의 후일담

     

    나는 금요일날 퇴사했는데, 월요일날 개발소장님이 출근하지 않았다고 한다. 개발소장은 대표에게 사직 의사를 석달 정도부터 계속 표명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자 바로 다음 회사로 옮긴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반복적인 기획 업무의 지시로 개발소장도 지쳐 있던 때였다. 당시 대표는 거의 괴롭히는 수준으로 개발소장을 호출하곤 했는데, 그도 굉장히 짜증이 났을 것이다. 개발 소장은 사표가 전혀 수리되지 않자 내가 그만 둔 다음날부터 출근하지 않았고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 들은 바에 따르면 대표는 무단 퇴사로 인한 소송을 걸겠느니 마느니 하다가, 서류상으로 휴직 처리를 하더니, 1년 뒤에야 사직 처리하고 퇴직금을 지급했다. 물론 개발소장이 고용노동부에 전화 한 통만 하면 바로 사직 처리가 됬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 하기보다는 좋게좋게 끝나는 것을 선택했다.

     

    나는 2017년 편입을 위해 P사에 들어왔다. 2018년 편입을 위해서 다른 개발자 D씨가 들어왔었다. 그는 통계학/컴퓨터공학 복수전공자로, 이미 프리랜서로 경력을 쌓아서 실력과 인맥이 있는 상태였다. 순수하게 편입을 쉽게 하기 위해서 P사에 입사했었다.

     

    D씨는 굉장한 포커페이스를 가지고 있었지만 대표의 경영 방식을 지긋지긋해 하고 있었다. 내가 퇴사할 때 쯔음에는, 병특 회사로 상위권인 H사와 이직 협의를 마쳤던 것 같다. D씨는 전직이 가능한 시기가 되자마자 사직을 표명했다.

     

    그 때에는 모든 개발자가 퇴사하고 D씨 혼자 남아 있는 상태였다. 대표는 전직동의서에 절대로 사인하지 않으려고 했다. D씨 다음 직장인 H회사의 법인팀은, D씨를 영입하기 위해 P사를 고발할 준비 직전까지 갔었다. 갈등이 최고조로 가다가, 결국 대표는 포기하고 사인을 해주었다. 법적 싸움까지는 가지 않고 갈등이 극적으로 봉합되었다. D씨를 마지막으로, P사의 개발 조직은 붕괴되었다.

     

    그 이후로도, 재직하는 디자이너 E씨에게 후일담을 간간히 들을 수 있었다. 대우에 불만을 가진 신입 디자이너들이 우르르 달려가서, 대혁명이 일어났다고 한다. 디자이너들을 굉장히 밝고 순수한 사람이었다. P사에서의 장기 근속이 디자이너들을 혁명가로 만들어 놓았다.

     

    1. 법적인 연차 사용을 보장하라.

    2. 6시 30분에 퇴근한 30분 추가 근무를 폐지하라.

    3. 지금까지 일한 30분어치들을 모두 산정해서 전액 입금하라.

     

    위와 같은 사항을 지키지 않으면, 노동부와 강남구청에 연락하여, 최저임금법 위반사항과 정부지원금을 규정대로 지급하지 않은 것을 고발하겠다고 말했다. 결국 대표는 두 손을 들어 원하는 것을 전부 들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디자이너들은 삼사개월 내에 우르르 퇴사했다. 누군가는 경력을 쌓고 새로운 직장으로 옮겼고, 누군가는 그냥 퇴사하고 근무 피로를 풀었다.

     

    퇴사하고 1년 반이 지난 지금, P사에서 나와 같이 근무했던 직원은 단 한 분밖에 남아있지 않다. 그래도 가끔 모여서, 그 때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현재진행형인 대표의 기행을 안주거리 삼기도 한다.

     

    첫 병역특례 회사는 병역특례 회사에서도 매운맛에 속하는 편이다. 지금 내가 말한 사건의 주인공들은 퇴사하면서 잡플래닛에 글을 썼었고, 한 명당 한 개씩 잡플래닛에 흉터같은 후기로 남았다. 물론 다니면서 즐거운 일도 많았지만, 상당한 마음고생을 했었다. 이직한지 1년 반이 지났지만, 지금 이런 식으로 글을 쓰는 것도 쉽지 않았다.

     

     

    맺음말

     

    첫 병역특례 회사는 병역특례 회사에서도. 물론 다니면서 즐거운 일도 많았지만, 상당한 마음고생을 했었다. 이직한지 1년 반이 지났지만, 지금 이런 식으로 글을 쓰는 것도 쉽지 않았다. 산업기능요원은 어떤 회사를 다니느냐에 따라서 근무 환경이 상당한 차이가 있다. 괜찮은 회사를 구직한 사람들은 좋은 복무환경에 많은 연봉과 화려한 경력을 쌓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반면에 그렇지 못하고, 고생만 엄청 하다가 너덜너덜해져서 복무가 끝나는 사람도 있다. 정말 천차만별이다. 물론 군대에 있는 것보다 바깥바람 쐬며 경력 쌓는게 여러모로 이득일 지도 모른다. 그래도 34개월은 상당히 긴 복무기간이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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