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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 이르쿠츠크 여행] 일곱째 날. 시베리아는 10월에 첫눈이 내린다
    여행/러시아 여행 2019. 10. 24. 21:50

     

    일곱째 날. 시베리아는 10월에 첫눈이 내린다

    10월 6일, 여행 일곱째 날 이야기

    1. 이르쿠츠크 귀환길은 순탄치 않았으니

    어느덧 여행의 끝자락이었다. 오늘은 기나긴 알혼 섬에서의 여정을 마치는 날이었다. 이르쿠츠크로 돌아가서 1박을 하고, 다음 날 한국행 비행기를 타면 여행이 끝난다.

     

    이르쿠츠크로 귀환을 하려면 여섯 시간 정도 장거리 이동을 해야 했다. 러시아에서의 장거리 여행의 기억을 떠올렸다. 알혼 섬에서의 관광을 마치고 리스트비얀카에서 알혼 섬까지 오는 강행군이 있었다. 알혼 섬 북부 투어가 만든 악몽도 있었다. 5시간 이상 참혹한 도로 상황을 견뎌야 이르쿠츠크로 귀환할 수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모종의 보험 장치가 필요했다.

    운전석의 옆자리를 주목했다. 경험상 그곳은 베테랑 여행자들이 눈치껏 앉는 자리였다. 심각한 차멀미로 다른 승객들이 실신한 와중에서도, 그곳에 앉은 여행객들은 앞 유리판에 DSLR이나 아이폰을 들고 촬영하는 것을 보았다. 멀미도 가장 덜했다. 또한 동영상이나 사진으로 드라이브를 남기기가 가장 좋았다. 무뚝뚝한 러시아 기사 옆에 앉는 것이 좀 부담스럽긴 했다. 앞선 이득에 비하면 그 정도는 별것 아니었다. 앞 좌석 차지하기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리셉션 앞에서 집합했는데, 우리가 이용객 중에서 가장 먼저 도착했었다. 차에 장시간 있음을 고려해서 옷을 얇게 입고 왔는데, 오늘은 평소보다 더욱 쌀쌀했다. 집합시간인 9시 30분이 가까워지며 중국인 여행객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리셉션에서 젊은 직원이 나오더니, 인원 체크하고 10시에 출발한다고 공지했다.

     

    우리는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서 호스텔 대문가에 가장 가까이 대기를 했었다. 어느 순간 중국인 부부가 대문가에 역시 대기하기 시작했다. 우리보다 정확히 한 발짝 더 대문과 가까이 위치했다. 이 부부가 우리의 경쟁자가 되었음을 직감했다.

    10시가 되어서 알혼 섬 버스로 삼삼오오 타기 시작했다. 기사가 트렁크를 열어서 짐을 받았다. 그런데 큰 수화물을 먼저 쌓아 놓았다. 작은 수화물은 그 뒤에 쌓아 올렸다. 우리는 짐의 부피가 작았다. 이대로라면 꼴찌로 타게 될 것을 직감했다. 그냥 트렁크에 짐을 안 넣고 냅다 기사 옆자리로 들어갔다. 겨울옷이 들어가 부피가 빵빵한 옷들을 껴안고 출발했다.

     

    알혼 섬은 모든 도로가 포장되어 있지 않았다. 맨 앞 좌석에 앉아서 차멀미가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다. 두시간 정도 지나고, 선착장에 도착해서 배를 타서 내륙으로 이동했다. 바람이 사무치게 추웠다. 하지만 바깥공기는 상쾌했다.

     

    내륙으로 도착하자 포장도로가 다시 반겼다. 훨씬 승차감이 좋았다. 올 때는 갖은 욕을 했던 울퉁불퉁한 도로였다. 알혼 섬에서 비포장도로에서 호되게 당했다. 그랬더니 포장도로가 매우 만족스러웠다. 아스팔트 만세였다.

    2. 시베리아는 10월에 첫눈이 내렸다

     

    한 시간 정도 운전했다. 비가 조금씩 오기 시작했다. 비는 이내 눈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눈은 거세게 내렸다. 운전기사도 신기한지 주행 중에 사진을 찍으며 메신저로 전송했다. 도로가 꿰뚫는 침엽수림에는 곧바로 눈이 쌓였다. 한국의 숲과 달리 앙상한 침엽수만 이루어진 설원의 숲이었다. 동화 속 겨울 나라에 초대된 것 같았다. 눈 맞은 침엽수림은 설탕 가루를 뿌린 듯 반짝였다.

     

    시베리아는 10월 초에 첫눈을 맞이했다.

    세 시간 정도 내륙으로 올라갔다. 눈은 비로 되돌아갔다. 겨울 숲은 소와 말이 방목되는 평원으로, 평원은 만두 카페로 되돌아갔다. 휴게소에 도착한 것은 두 시경이었다. 기사는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랐다. 익숙한 듯이 구글 번역기를 꺼내서 러시아어를 중국어로 번역해서 내게 보여 주었다. 대충 30분 뒤에 출발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뒷자리 중국 승객들에게 "서티 미닛!" 이라고 외쳤다.

    그리고 휴게소에서 내렸다. 메뉴판에서 먹을만한 것중에서 가장 빨리 나오는 것을 손으로 짚었다. 거스름돈이 2 루블 정도 비어서 고액권을 내밀었다. 그냥 동전 다 쓸어 받겠다고 했다. 2 루블 깎아서 먹었다.

    대충 평범한 음식을 먹고, 두어 시간 더 운전했다. 이르쿠츠크 시내에는 5시경에 도착했다. 벤에 탑승한 10시부터로 계산하면 7시간이 소요되었다. 시간이 늦어 미리 세워둔 관광 일정은 전면 폐기했다. 주행 중에 비와 눈이 격렬하게 내려서 이동 시간이 늘어진 것 같았다.

    3. 다시 만난 이르쿠츠크는 비가 추적추적

    2시쯤 이르쿠츠크로 도착할 것을 예상했기에, 당초에 가지 않았던 곳을 이어서 방문하려고 했었다. 계획을 세울 때는 세 가지 변수가 우리 머릿속엔 없었다. 첫째는 도착 시간이 2시가 아니라 5시라는 점이었다. 둘째는 우리는 우산이 없고 이르쿠츠크는 비가 오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셋째는 장기간의 오프로드 주행이 체력을 갉아먹었다는 점이었다.

    아무튼 이루크츠크에서는 거세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리의 부피 큰 짐에는 실속 없이 우산도 없었다. 우산은 없었고 그 대신이랄까 아픈 허리와 피곤해진 정신은 있었다. 얇은 카시트가 덜컹거리며 실컷 안마해 준 탓이었다. 기사가 승객들의 숙소를 조사하면서 '숏(영수증)'이라고 하며 500 루블을 꺼내 보였다. 숙소 앞에 내려주는 대신에 500 루블을 더 달라는 소리 같았다. 휴게소에서 잔돈을 털어넣었기에 100 루블 두 장, 천 루블 한 장이 있었다. 말 안 통한 척하면서 200 루블로 승부를 보려고 했다. 결국 실패했다. 1000 루블을 내고 나머지를 거슬러 받았다.

    4. Z 호스텔에서 러시아의 마지막 밤을

    이전에 묵었던 '몬타나 호스텔'은 이르쿠츠크에서 가장 저렴한 호스텔이었다. 난방이 전혀 되지 않았고 공용 화장실은 불결해 보였다. 오늘 숙소는 한국에서 미리 잡아두지 않았다. 리스트비얀카에서 피아 씨가 Z 호스텔을 예약했었다. Z 호스텔은 난방이 잘 되었고 공용 화장실과 샤워실의 청소가 잘 되어 있었다. 다만 와이파이 상태가 조금 불안정했다. 피아 씨가 가져온 와이파이 증폭기가 쾌적한 웹서핑에 도움이 되었다.

    아쉽게도 리셉션에서 우산을 빌릴 수 없었다. 중앙 시장까지 무작정 가며 우산을 사보기로 했다. 도중에 24시간 마트인 슬라타를 들렸다. 우산을 팔지 않았다. 중앙시장에 가는 길에 꽤 많은 상점을 지났지만, 우산을 파는 곳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중앙 시장도 파하는 분위기였다. 마침 과일가게에서 호객을 하길래, 석류를 개당 50루블(1000원)에 두 개 샀다. 비도 맞고 해서 숙소로 들어가는 길에 점찍어 둔 커피숍에 들렸다. 커피숍 앞에 여행자의 동상이 있었다. 비 맞는 동상의 표정이 아주 오묘했기에 이입이 되었다. 어째 여행은 끝물까지 좀처럼 본래 기획인 호화 힐링 인싸 여행과 갈수록 멀어지는 꼴이었다.

     

    5. 이르쿠츠크 COFFEESHOP COMPANY에서 사과 슈트르델을

    우리가 간 커피숍은 COFFEESHOP COMPANY였다. 만두 냄새 밴 러시아의 커피점이 아니었다. 페이스트리와 커피의 향기가 나는, 내 상식 속 커피점이었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문을 곧 닫을 건지, 나는 카푸치노와 유명하다는 애플파이, 계피 사과 슈투르델을 하나 주문해서 먹었다. 카푸치노는 평범한 커피 맛이 났다. 슈트르델는 평범하게 촉촉하고 달았다.

    돌아오는 길에 내일 아침 먹을 빵과 도시락 라면, 치즈, 요구르트를 마트에서 주문했다. 숙소에서 조금 쉰 뒤에 밥을 먹으러 나갔다.

     

     

    6. 이르쿠츠크 Presgo의 토마토 스파게티는 양이 푸짐했다

     

    여행 둘째 날 갔던 그릴 그루트와 같은 건물에 있는 Presgo였다.

    마르가리타 피자와 토마토 스파게티를 하나 시켰다. 한 메뉴당 400루블(8000원) 정도 했다.

    러시아 아니랄까봐 양이 매우 푸짐했다. 우리나라 파스타 분량의 두 배, 일본의 파스타 분량의 세 배는 됨직했다. 러시아 음식 특유의 그 미묘한 현지화가 묻어 나왔긴 했다. 그래도 토마토 파스타의 원형에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숙소에 돌아가서 디저트로 석류를 까먹었다. 석류는 중앙아시아 지역에 여행 갔을 때나 맛볼 수 있는 과일이다. 오랜만에 석류를 먹었더니 감회가 남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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